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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삶 (Nature & Life) :: MD앤더슨 종신교수 김의신 박사의 癌이야기(5)

 

 

MD앤더슨 종신교수인 김의신 박사가 말하는 암이야기입니다. 지극히 상투적인 말이 될 수 있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사고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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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미국 암환자들과 얘기하다 보면, 자신의 암 치료 내용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지금 무슨 치료를 받고 있느냐?"고 물으면, 환자가 "탁솔(taxol) 30㎎ 받고 있다"고 대답한다. 탁솔은 항암제 이름이다. 이처럼 약 이름은 물론 용량까지 정확히 알고 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떤 치료를 몇 회 받았고, 지금은 뭘 받으려 한다고 똑 부러지게 대답한다. 나이 든 노인들은 그러한 내용을 종이에 써와 보여준다. 교육 수준이 낮은 환자들도 자신의 질병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 반면 한국 암환자들은 상대적으로 자기 암 치료에 대한 내용을 잘 모른다. "무슨 약 먹고 있느냐?"고 물으면, 그냥 '빨간 약' '노란 약' 먹는다고 말한다. 용량까지 정확히 아는 환자는 지금껏 한 명도 못 봤다.

 

암 종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 환자들에게 "무슨 암에 걸려서 왔느냐?"고 질문하면, 폐암 또는 위암이라고만 답하는 게 끝이다. 폐암만 해도 암이 시작된 세포에 따라 암 종류가 수십 가지 있고, 저마다 치료법이나 생존율이 다른데 말이다. 미국 암 환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폐암 중 비(非)소세포암 3기"라고 말한다. 폐암 종류와 병기(病期)까지 콕 찍어서 말한다. 한국 환자들이 병기까지 아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 암은 모두 초기 아니면 말기 식이다. 심지어 의료인 출신 암 환자들조차 자신의 암 상태에 대해 잘 모를 때가 있다. 미국 암 환자 중에는 치료법에 대한 정보를 의사 수준으로 줄줄이 꿰고 와서는 MD 앤더슨이 그걸 잘한다고 해서 여기에 왔다고 말하는 환자들이 꽤 있다.

 

 

한국은 교육 수준이 세계 넘버 원이다. 요즘 대학 나온 사람이 절반을 넘는다. 그럼에도 여러 나라 환자 중 한국 환자들이 자기 병에 대해 가장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 의사들이 안 가르쳐서 그런지 몰라도, 본인도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은 모양이다. 환자가 자기 병을 모르면 제대로 된 질병관리를 하기 어렵다. 병원에서 진료기록을 확인하며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만, 환자가 말하는 작은 단서 하나로 약을 바꾸거나 치료 순서를 바꾸는 경우가 꽤 있다. 환자 스스로 자기 병과 몸에 대해 공부해야 치료 결과가 좋은 법이다.

 

심장병의 주범인 콜레스테롤만 해도 그렇다.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200을 넘으면 안 좋다는 것을 이제 웬만한 환자들은 다 안다. 그중에서도 '저밀도(LDL) 콜레스테롤'이 혈관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핵심 물질인데, 이 수치를 아는 환자는 드물다. 'LDL'이 높은데도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방심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를 가끔 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특히 암 환자는 자신의 암에 대해 정확히 알고 그것을 잘 치료해줄 의사와 병원을 신중히 골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큰 병원이라고 해서 모든 암을 다 잘 고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선택한 병원이라면, 의료진을 믿고 따라야 치료가 잘 된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한 대기업 회장은 암 치료로 이곳에 6개월 동안 머물면서 단 한 번도 의료진에게 반문이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그 힘든 암 치료 과정에서 그 양반인들 왜 불안한 게 없었겠는가.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암 치료는 '자기 암 공부' → 적합한 의료팀 선택 → '믿음과 희망 갖기' 식으로 가야 잘 된다.

 

 

지난 30년간 한국에서 오는 암 환자들을 보거나,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암 발생 패턴을 보면, 한국인 암은 10~20년 격차를 갖고 미국인 암 발생 패턴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예전에는 위암·간암 환자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대장암·유방암 환자가 부쩍 늘었다. 십수년 전 미국 상황 그대로다. 서구식 식사로 지방질 섭취가 늘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미국은 수년 전부터 의사와 시민단체가 나서서 베이컨 먹지 말기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였다.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 파는 햄버거에도 동물성 지방량 제한 법안을 만들어 지방량이 초과하면 고발당한다. 음식점에도 지방량 제한 규정을 두어 음식에 과도하게 지방이 들어가면 안 된다. 식품 당국이 이를 잘 지키는지 보기 위해 식당을 불시 방문하여 조사하기도 한다. 이런 지방 섭취 줄이기 운동으로 대장암 발생이 갈수록 줄어드는 태세다.

 

하지만 한국은 현재 대장암·유방암이 급증하는데도 '삼겹살 회식 문화'가 여전하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 삼겹살 구워 먹는 장면이 너무 많이 나온다. 드라마가 지방 섭취를 조장하는 꼴이다. 식생활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미국인들이 당한 것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이제 고기 많이 먹는다고 마냥 좋은 세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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