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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삶 (Nature & Life) :: MD앤더슨 종신교수 김의신 박사의 癌이야기(3)

 

 

MD앤더슨 종신교수인 김의신 박사가 말하는 암이야기입니다. 지극히 상투적인 말이 될 수 있지만 간과해서는 안될 사고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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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폐암에 걸린 환자가 지난해 이곳 MD 앤더슨 암센터에 왔다. 환자는 폐암 덩어리와 그 주변 폐를 다 절제하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고 했다. 그러니 빨리 수술을 해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조직검사를 해보니 암 세포의 성질이 재발이 잦은 '고약한 타입'이었다. 폐암 형태도 수술을 단박에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크기였다. 이곳 의료진은 먼저 항암제 치료를 하고 그것으로 폐암 크기가 줄어들면 그때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환자는 수술을 당장 받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수술에 매달렸다. CT(컴퓨터단층촬영)에서 뻔히 암 덩어리가 보이는데 불안해서 못살겠다는 것이다. 수술을 받으면 낫는다고 들었는데 항암제를 먼저 먹어야 한다니 내키지 않는 모습이었다.

 

미국과 한국 병원의 암 치료법 중에 차이 나는 것이 있다. 일부 한국 병원에서는 아직도 암 덩어리를 발견하면 무조건 수술로 일단 떼놓고 보자는 생각을 가진 것 같다. 예전에는 수술로 암을 제거할 수 있다면 수술이 먼저라는 게 원칙이었지만, 요즘 이곳 MD 앤더슨 암센터는 그런 생각을 접었다.

 

암세포의 행동 패턴을 설명하는 오래된 이론이 있다. '종자와 토양'(seed & soil) 설이다. 쉽게 말하면 폐암 세포는 폐에 가서 살림집을 지으려 하고, 유방암 세포는 유방에 가서 집 지으려 한다는 것이다. 눈에 띌 정도로 커진 암 덩어리에는 이미 수조개의 암세포가 있다. 그중에는 이미 혈관이나 림프관을 타고 다른 부위로 날아간 암세포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의 유방암 경우를 보자. 암이 유방에서 발견됐다고 유방을 싹둑 절제하면, 집 나간 유방암 세포는 살 집을 잃고 뇌나 뼈 등 다른 곳에 정착할 가능성이 있다. 드물긴 하겠지만 암 덩어리부터 제거하면 뒤늦게 다른 곳에서 암이 재발할 수도 있다. 수술 잘되어 깨끗하게 나았다고 믿고 있다가, 암이 다른 곳에 재발해 낭패를 본 경우의 상당수는 그런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암은 '전신병(全身病)'이다.

 

 

이곳 MD 앤더슨에서는 수술하기 전 조직검사로 암세포를 소량 떼어내고 분자생물학적 검사나 병리학적 조사로 암세포의 '성질'을 조사한다. 암세포가 증식을 빨리하는 고약한 타입인지, 중구난방으로 자라는 '튀는 형'인지, 암 발생에 관련된 유전자가 악성(惡性)인지 등을 파악한다. 그런 특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설사 수술로 뗄 수 있는 암 덩어리가 달랑 하나라도 수술을 먼저 안 한다. 본래 자리 잡은 '암 집'은 당분간 건드리지 않고, 항암제 치료로 만에 하나 집 밖에 나가 있을 수 있는 암세포를 먼저 소탕한다. 수술은 나중에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치료 효과가 좋다는 이유다. 그 사이 원래 있던 암 덩어리도 크기가 줄어들기도 한다. 물론 각종 검사에서 암세포 성질이 '얌전한 것'으로 나오면, 수술로 먼저 제거한다.

 

하지만 상당수 한국 암환자들은 수술에 목맨다. 종양내과와 외과가 잘 협동 진료하는 곳은 항암제·수술 복합 치료를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꽤 있다. 한국 의사들에게 환자를 설득해서 보다 확실한 치료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면, "환자들이 자기 몸에 암 덩어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을 못 견뎌 한다"고 대답한다. 수술로 확 잘라내어 CT 사진에서 일단 암이 안 보여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적인 사고가 아니다. 암 치료법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의술도 변한다. 미국의 여러 유명 암센터가 있는데 과거에는 수술 잘하는 병원이 최고로 꼽혔는데, 최근에는 항암치료와 수술을 조화롭게 잘하는 암센터의 명성이 더 올라갔다.

 

한국 병원의 암 치료 형태 중에서 또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서울의 몇몇 대형 병원에 암 환자가 너무 집중돼 있다. 유명 의사한테 수술만 잘 받으면 암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MD 앤더슨이 세계 최고 암센터라고들 하지만, 다른 병원에서도 고칠 수 있는 '일반 암'을 여기서 치료받겠다고 먼 곳에서 찾아오는 미국 환자는 드물다. 다른 병원에서 고치기 어려운 복잡한 케이스이거나, 암 종류가 매우 드문 것이어서 전문가를 쉽게 찾을 수 없을 때 주로 이곳에 온다. 한국처럼 무조건 서울 대형병원을 찾는 식은 아니다.

 

암은 편안한 마음 상태에서 편리한 환경에서 꾸준히 치료받아야 잘 낫는다. 그런 면에서 암은 평생 꾸준히 관리하고, 예방하고, 치료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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